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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심우송 강설(준수스님) 한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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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글




먼저 내가 ‘소 찾는 열 가지 게송[十尋牛頌]’ 또는 ‘소 찾는 열 가지 그림[十尋牛圖]’을 

강화하게 된 동기를 밝히자면 이렇다.


불교를 좀 아는 분들은 ‘참 나를 찾아라.’ ‘참 마음’ ‘참 자성’ 하는 등의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사실 ‘참 마음’이니 ‘참 나’니 하는 화두보다 정작 내가 알아야 할 ‘나’는 현재의 ‘나’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대로의 ‘나’의 실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과거의 행위와 학습, 환경, 경험 등의 기억으로 이루어졌다. 

전생이니 하는 말은 일단 여기서 필요치 않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학습과 행위, 경험 등으로 이루어진 ‘나’를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에 관한 것은 본론에서 반복적으로 거듭 거론될 것이다.


깨달음의 목적은 ‘나’로 시작되는 모든 속박과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 있다. 

최소한 휘둘리지는 말아야 한다. 길들어진 ‘소’와 길들어지지 않은 ‘소’를 함께 생각해 보라.


〈어린왕자〉에서 여우는 왕자에게 “네가 나와 친구가 되려면 나를 길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길들어진 ‘나’와 길들어지지 않은 ‘나’를 생각해 보라.


야생에서 자란 ‘소’는 미련하고 고집불통의 통제 불능의 동물이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코를 뚫어 고삐를 채웠겠는가? 무지한 존재일수록 소통이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느 동물인들 타인의 통제와 지배를 순순히 받고자 하겠는가? 

길들어지지 않은 ‘나’는 야생에서 자란 ‘소’나 ‘말’과 다름이 없다.


여기에서 말하는 ‘소’는 야생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무지몽매한 중생의 자아를 말하고 있다 할 것이다. 

나와 나의 관계에서도 내가 태생적 자아의 야생성을 길들이지 않는 한 쉽게 통제하고 관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와 살고 있다. 내가 그대로 자연이며 세상이고 가족이며 나아가 다른 존재의 사람들 그리고 모든 생명이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나를 알 때 나 밖의 세상을 아는 것이고, 

나를 알 때 진정 모든 존재의 비밀을 알게 되며, 

내가 나로부터 자유로울 때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를 얻는다. 

사람에게 가장 무지한 것이 있다면 바로 ‘나’일 것이다.


불교는 바로 과거로부터 기억된 ‘나’를 찾아 나를 알아가는 그래서 나를 길들이고 내가 나를 자신의 의지대로 나에게 순응하게 하는 수행과정을 알고 있다.


‘소를 찾는 열 가지 수행’에 관한 방법은 중국 북송 때 도가와 불가에서 시작되었으며 점차 정리되어 지금까지 선가에서 매우 중요한 하나의 깨달음의 방법으로 전해오고 있다.


먼저 그림으로 된 ‘십심우도十尋牛圖’가 있고 그림에 게송을 붙여 ‘십심우송十尋牛頌’이 있으며 후에 게송을 해석한 문장이 첨부되어 전해온다. 그림[圖]·게송[頌] 그리고 ‘심우도’ 또는 ‘심우송’을 해석한 문장은 어느 때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여기서는 생략하였다.


우선 여기에 소개된 ‘십심우송十尋牛頌’은 중국 북송 말, 정주 양산에 곽암廓庵선사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여타 스님들의 여러 게송이 전해지고 있다.


본 강화에서는 본문에서 소개했듯이 선에서 말하는 심오한 경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참 나’니 ‘참 마음’이니 ‘참 자성’이니 하는 등의 일상사 밖의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분명 내 안에 또 다른 나, 야생에서 자란 ‘소’처럼 나와 소통되지 않으며 나의 의지를 전적으로 따르지 않는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공감하고 ‘심우송’이 전하는 지혜를 체득하길 바라는 것이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병의 원인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채워지지 않은 빈곤한 심리는 어릴 때 충족하지 못한 심리적 결핍에서 발생한 것이다.


성장기에 자신도 모르게 받았던 상처나 모욕적 경험 그리고 억압된 환경에서 자율적 의지를 빼앗긴 가슴 아픔 기억들은 자신의 깊은 무의식 상태에 잠재되어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그러한 과거의 잠재된 무의식에 지시를 받으며 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나를 힘들게 하고 또 무언가 보상받고 싶어 하는 욕구들이 나도 모르게 쌓여온 과거의 인자들에 의해서 지금 내가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디 ‘심우송’을 통해 과거에 만들어진 기억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길 바라는 바이다.


퇴촌에서 준수 講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