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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봉스님 62권째 저서 법성게를 읽고 화엄의 세계를 만나다.>

 

- 부드러운 살 같은 글 강건한 뼈 같은 내용 -

 

210자의 한자, 7자씩 30구로 이루어진 법성게는 법회 때마다 반야심경만큼 많이 독송하는

익숙한 글인데 의상조사께서 화엄경을 요약한 것이다.

화엄경은 깨달음의 내용을 그대로 표명한 경전으로 그 내용이 깊고 넓어서 평생을 연구해도 모자라다고 한다.

또한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서 그 안목으로 보지 않으면 재대로 화엄경을 본 것이라 할 수 없다.

 

그만큼 법성게를 해설하는 것은 무척이나 무거운 일인 것이며 자신의 모든 것을 걸지 않고서는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라 할 것이다.

 

평생을 불교 책 저술에 매진하시는 동봉스님의 62권째 저서는

누구도 쉽지 않은 이러한 무게감을 가지고 있는 법성게이다.

 

어떻게 그 방대한 화엄경이 210자로 요약되는 것이며

그 핵심 내용은 무엇일까?

 

머리글에서부터 뒤통수를 맞은 듯한 커다란 충격과 함께 화엄경 전체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한 커다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역시 불교의 두괄식 글씨기(결론을 앞에서 빵 때리는)는 참 멋지다.

 

뼈와 살로 시작되는 머리글의 이야기.....

뼈 없는 몸

피 없는 몸

물렁뼈 없는 몸

살갗 없는 몸을 생각할 수 있을끼?

 

 

이렇게 보니 참 쉽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이란 말인가?

뼈와 피와 살과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이루어진 한송이 꽃 그것이 나의 몸이라면...

돌과 바람과 물과 불이 조화롭게 이루어진 한송의 꽃 그것이 이 세상이라면...

 

화엄의 세계가 조금은 보이는 듯하다.

 

그런데 묘하게도 동봉스님의 글을 보면 뼈와 살이 느껴진다.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여러 이야기들을 풀어가고 있는 글은 마치 살갗 같고

그 속에 뼈처럼 핵심적인 내용이 담겨 있어 오랫동안 마음에 깊이 박힌다.

뼈가 없으면 허무한 살덩이 같은 의미 없는 내용이고

살이 없으면 딱딱하고 건조한 학문적 접근만을 하게 되는 것이다.

스님의 글쓰기 방식이 살과 뼈의 비유에서 조금 이해되었고,

매우 화엄스러운 글쓰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동봉스님께서는 화엄일승법계도의 그림은 마치 뼈와 뼈를 잇는 과절을 마디 같고

법성게의 노랫말은 살갗 같다고 표현하신다.

 

전체적인 것을 완벽하게 깨달은 사람은 아주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다.

의상 스님께서 화엄의 깊은 내용을 완전히 깨달으시고 가장 단순하면서

장 분명한 그림으로 표현하신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법성게의 글을 쓰셨을 것이다.

 

4개의 사각형이 모여서 큰 하나의 사각형을 그린 화엄일승법계도를

동봉 스님의 글을 보면서 다시 보니 정말 마치 꽃을 형상화 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4개의 염기서열을 그린 DNA의 그림과 이것을 해설한 900자의 논문이

법성게의 그림과 글의 구조와 비슷한 것에 새롭게 놀랐다.

 

화엄세계를 만나는 법성게에 대한 동봉스님의 해설은 이렇게 처음에서부터

핵심을 때리며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화엄경은 이런 것이다.’ ‘법성게는 이런 것이다.’ 라고 관찰자처럼 형식적으로

해설을 했다면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 화엄의 안목으로 현대의 삶을 그대로 관찰하며 진짜 화엄세계에 대한 글을 쓴다면 그것이

펄펄 살아 있는 경의 해설이 아닐까?

현대 과학과 현대 문명에 대한 다양한 안목과 해석을 넘나들며

경전의 한구절한구절이 현대 사회에서도 얼마나 가치가 높은 것인지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650여 쪽의 긴 내용이지만 부드러운 살갗 같은 글은 하나도 지루하지 않게 술술 읽힌다.

그리고 내용 전체를 관통하는 뼈 같은 메시지는 선사들의 한마디처럼 강력하게 마음을 두드린다.

 

화엄의 세계를 만나려는 이들에게 동본스님의 62권째 저서 법성게를 권한다.